270억 남기고 사망한 남편, 유언장에는…[더 머니이스트-김상훈의 상속비밀노트]

입력 2024-04-15 07:37   수정 2024-04-15 11:31



1964년생인 사업가 A씨는 B씨와 혼인해 아들 C와 D를 두었습니다. A씨와 B씨는 20년간 혼인생활을 유지했으나 2012년 아내인 B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됐습니다. 홀로된 A씨는 자신도 어느날 갑자기 사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재산문제를 정리해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13년에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유언장 내용은 "자신의 전 재산을 아들 C와 D에게 공평하게 절반씩 나눠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후 A씨는 16살 연하 30대 X녀를 만나게 됐습니다. 2년 정도 교제 후 A씨가 53세였던 2017년에 X녀와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A씨는 X와의 사이에서 딸 Y를 낳았습니다. A씨는 딸이 네살이 되던 해인 2022년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A씨는 사망 당시 200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70억원 상당의 금융자산을 남겼습니다. X와 Y는 A의 유언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만약 A씨의 유언이 유효하다면 A씨의 전 재산은 전처와의 아들이었던 C와 D가 모두 가져가게 됩니다. 이에 대해 X와 Y는 자신들이 존재하기 전에 작성된 유언장은 추정상속인(피상속인이 사망하면 상속인이 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을 배제한 채 이루어진 것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유언이 무효가 되기 위해서는 유언장이 형식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제1060조), 유언자가 유언당시 유언능력이 없어야 합니다(제1063조). 아니면 착오, 사기, 강박에 의해 유언을 한 경우에 그 유언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유언자가 사망한 이후 유언자의 취소권을 상속인이 상속받아서 그 상속인이 취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유언장 작성 이후에 태어난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누락된 상속인제도(Omitted Heirs)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유언장이 작성된 이후에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유언이 없는 것으로 취급해 무유언상속법(Intestate Succession)에 따라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통일상속법(Uniform Probate Code)에서는, 유언자가 의도적으로 상속인을 누락시킨 것이 유언장에 분명한 경우가 아닌 한, 유언장 작성 이후에 혼인한 배우자도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떤 상속인이 유언장 작성 이후에 태어나거나 혼인을 했다는 사정이 유언의 효력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유언자가 유언장을 작성한 후 재혼을 하거나 새로운 자녀를 낳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언을 철회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8. 5. 29. 선고 97다38503 판결). 따라서 X와 Y는 A씨의 유언을 무효로 하고 자신들의 법정상속분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X와 Y는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유류분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①유언장을 작성할 당시에 추정상속인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견해와 ②반드시 유언장 작성시에 존재할 필요는 없고 유언자가 사망할 때 존재하면 충분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전자인 ① 견해의 경우 A씨가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에는 X가 A의 배우자도 아니었고 Y는 태어나지도 않았으므로 추정상속인의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X와 Y는 유류분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반면 후자인 ②의 견해에 의할 경우 A가 사망할 당시에 X는 이미 배우자의 지위에 있었고 Y는 자녀의 지위에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X와 Y는 유류분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 민법은 유류분 권리자가 되기 위한 요건을 피상속인의 직계비속과 배우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제1112조) 그러한 지위의 취득 시점을 제한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②인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X와 Y가 유류분 권리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이 청구할 수 있는 유류분 가액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A씨가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총 상속재산 270억원 중 X의 상속분은 90억원(270억원*3/9)이고 A의 자녀들인 C, D와 Y의 상속분은 각각 60억원씩(270억원*2/9)이 됩니다. 그렇다면 X의 유류분은 그 중 1/2인 45억원이고, Y의 유류분은 30억원입니다. 따라서 두 아들인 C와 D가 A의 유언장에 기해서 A의 재산을 모두 취득할 경우, X와 Y는 C와 D에 대해 각각 45억원과 30억원의 유류분반환을 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A씨는 자신의 사망 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유언장을 작성했지만, 되레 이 때문에 기존 자녀들과 재혼한 배우자·자녀들 사이에 분쟁을 만들게 됐습니다. 기존 유언장이 새로운 배우자나 자녀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유언장을 변경하는 것이 후일의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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